게이 커뮤니티의 약물 문제는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문제입니다. 언론과 같은 커뮤니티 외부의 시선으로 “게이 마약 파티”라는 선정적인 문구를 사용하면서 언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 더 가깝게 우리 주변과 친구들의 사용 경험을 직접 목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볍게는 잭디나 그라인더와 같은 데이팅 앱에서 “그거” 또는 “ㅇㅇㅅ”와 같은 다양한 은어로 약물을 언급하거나, 켐섹스를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하고, 주변에 자살한 친구가 약물 사용으로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해외 서킷 파티 등에 놀러갔다가 약물 사용을 제안 받았다는 친구들의 얘기를 듣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약물에 기인한 사망 사건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경찰의 함정 수사에 걸려들어 변호사비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 지인의 경험를 듣거나, 경찰의 압박과 재판에 실익을 위해 다른 사용자를 실토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서 전해듣기도 합니다.

단순 사용만으로도 강력하게 처벌하면서 범죄자로 낙인 찍는 대한민국의 사법제도와는 별도로, 우리의 반응은 어떤가요?

어떤 이는 약물 사용을 선택의 문제로 간주하고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가벼운 일이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잠재적 범죄자로서의 낙인은 과거 우리 커뮤니티가 PL(People Living with HIV/AIDS)들에게 부여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약물의 이슈는 이미 어떤 퀴어의 삶과 관계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슈를 파악하고,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한 사람의 경험이 전체를 대표할 수 없지만, 경험을 직접 듣고, 이해하는 일은 약물에 대한 담론을 쌓고, 운동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 되어야 합니다.

약물 사용자가 겪는 경험들 중 가장 힘든 부분이 장기간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일 것입니다. 보통, 환청, 경찰이 나를 쫓고 있다는 편집증 적인 불안함, 체중 감소로 인한 외모의 변화, 등을 많이 겪습니다. 약물 사용을 중단하고 싶지만, 다시 사용하게 되면서 스스로가 가지는 자괴감, 또한, 많은 사용자들이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용 패턴을 반복하면서 우울증을 겪게 되기도 하고, 경찰의 함정 수사에 걸려들어 수사를 받게 되는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자살의 충동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주사기를 사용한 약물 사용 중, 또는 콘돔없이 하게 되는 무분별한 섹스를 통해 HIV나 다른 성병에 감염되어 불편을 겪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도,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약물의 기운을 빌려 더 열심히 일을 하기도 하고, 또는 잦은 결근이나, 약물 사용이 발각되어 해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부작용보다도 더 힘든 부분은, 어떤 일을 겪고 있어도 지지해주거나, 털어 놓을 곳이 없다는 것이고, 많은 경우에는 사회적인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작용에 대해서는 돌고 도는 소문을 듣고, 그 위험성을 간과하거나, 또는 집착하는 경우가 있고, 법률/의료적인 도움을 요청하는데 소극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가이드북은 약물 사용자가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심적인 거리감을 좁히고, 간접적으로 나마 개입하기 위해서 제작되었습니다. 이 가이드북은 국내/외 다양한 전문가와 단체에서 제작한 자료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수집한 실제 사용자들의 스토리에 근거합니다. 이 가이드북을 통해, 약물 사용으로 인한 위해 요소를 최소화(harm reduction)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전달되기를 원합니다. 법적인 규제 속에서, 사회적인 낙인 속에서, 본인 스스로의 자괴감 속에서, 누군가는 그 삶을 이해하고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 약물 사용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가이드북이 본인이 약물 사용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용패턴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켐섹스 제안을 받아보거나 주변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사람이라면 이 가이드북이 약물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켐섹스가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미리 대비하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자원으로 쓰이기를 바랍니다.
→ MSM과 게이커뮤니티의 건강과 미래에 대해서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가이드북이 위험에 처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알아보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자원을 연결시켜줄 수 있도록 하는데 쓰이기를 바랍니다.